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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감상에 가려진다. _ SK텔레콤 나의 이야기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때 위의 그림이 <노인과 여인>이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략 위의 그림에 달린 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푸에르토리코의 국립미술관에는 푸른 수의를 입은 노인이 젊은 여자의 젖을 빠는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이 걸려있다.
방문객들은 노인과 젊은 여자의 부자유스러운 애정행각을 그린 이 작품에 불쾌한 감정을 표출한다.
이런 그림이 어떻게 국립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미술관의 입구에...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노인의 부도덕을 통렬히 꾸짖는다.
이 그림은 정말 3류 포르노인가?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 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 감옥에 넣고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음식물 투입 금지'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갔다. 딸은 해산한 지 며칠 지나서 무거운 몸으로 감옥을 찾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이 부끄러운가.
여인은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었다. 그리고 불은 젖을 아버지의 입에 물렸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동일한 그림이 '포르노'로 보이기도하고 '성화'로 격찬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끔 본질을 파악하지도 않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우를 범한다. 본질을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 교만과 아집 그리고 편견을 버려야만... 세상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위의 글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사실이 아닌 글에 묘한 반전이 있기에 사람들은 더욱 더.. 믿기를 원한다.
 
위의 그림은 <시몬과 페로 Cimon and Pero> 라는 피터 폴 루벤스라는 유명한 네덜란드화가가 1630년에 그린 작품이고 네덜란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그리스설화에 얽힌 이야기를 작품으로 그린 것이고 비슷한 유형으로 Roman Charity(로마의 자비) 라는 단어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아주 많은 유사한 그림이 검색되어져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류 포르노에서 성스러운 독립투사의 이야기로서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각인되었기에.. 그 이후의 "진실"에 대해서는.. 쉽게.. 밝혀지지 않고.. 지금도.. 위의 내용이 그냥. 사실로서 네티즌에게 알려지고 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감성에..입각하여 기억력을 되새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실은 별로 재미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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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슷한 진실의 관점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가려지는 케이스는 많이 있다.
특히 블로그 문화가 발달된 최근의 상황에서 파워블로그의 의견은 왠만한 진실을 왜곡시키기 좋게 만들고 있다. 
다음은 그런 예중에 하나이다.

네티즌에게는 정치(특히 한나라당), 종교(특히 기독교), 와 더불어 많은 클릭수를 올릴 수 있는(공감을 하는) 내용이 재벌기업에 대한 비판의 내용이고.. 내수중심으로 사업을 키워온 SK텔레콤은 그 중심에 있다.

SK텔레콤에 대한 많은 네티즌의 비판중에 항상 . 덧붙여 이야기 되는 것이.. 인수시의 권력특혜를 이야기 한다..

정말 SK텔레콤은 권력의 특혜로 인수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당시 증권사에 근무하면서 몇년동안 일어났던 상황을 지켜보았던.. 당사자로서..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한 사실 근거가 있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권력의 특혜(당시 대통령과 사돈이라는 이유로..)의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1990년 7월 12일은 우리나라 이동전화서비스에 중요한 날이다. 당시 체신부는 '통신시장 구조조정 계획'이란 것을 발표했다. 핵심내용은 한국이동통신외에 새로운 회사를 하나 더 설립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
이 때 전국 9개 도별로 1개씩과 서울에 2개의 무선호출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발표됐다.
체신부의 이 발표는 이른바 '제2 이통사업권'획득을 위한 재계의 대전쟁을 불러왔다. 이에따라 불공정방지를 위해 삼성, 현대, 금성(현LG), 대우 등 장비제조업체가 배제된 가운데 선경, 포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 등 6대 그룹및 대기업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92년 7월 29일 1차 심사결과 선경주도의 '대한텔레콤'과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 등 3개 기업이 선정됐다.
이어 같은 해 8월 20일 2차 심사결과 발표에서 '대한텔레콤'이 최종 사업권을 갖게 됐다.
그러나, 선경은 오너인 최종현 회장이 당시 현직 대통령(노태우)과 사돈간이라는 이유로 국민여론이 좋지 않았으며, 6공 말기의 정치권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과 1주일만에 사업권은 '백지화' 되고 만다.
8월 27일 대한텔레콤은 기자회견을 통해 '오해 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제2 이동통신 사업을 재추진 하겠다"며 사업권 반납을 발표했다
 
정리하면.. 1992년 8월(24일)은 1989년 4월 1천포인트 돌파이후 속절없는 지수 하락으로 460포인트까지 떨어졌던 시기였고,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이러한 하락장에서 "멀티미디어 관련주"(지금은 너무 당연한 단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 신조어에 가까울 정도로 테마가 형성 되었던 시기였다.) 중심으로 상승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실제 SK그룹(당시 유공이 대표주식이었음)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던 8월 20일이후 SK주식은 거의 반토막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 때 상황은 두가지 였다. 하나는, 이미 선정당시부터 국민여론이 좋지 않았고.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씨의 반발에 의해서 1주일만에 포기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실제 기대감에서 주가가 사전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 당시만에 해도 이동통신이 과연 돈을 벌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시장에 반영된 것이다. 루머에 사고 뉴스에 팔라는 증시격언을 단면적으로 보여주었던 상황이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몇년동안 준비하고(서류만해도 트럭 몇대 분량이었고..) 평가를 걸쳐서 선택된 제2이동통신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반면에 경쟁기업이었던 코오롱은 이후 가파른 상승을 하게된다. 즉 SK그룹이 포기함에 따라 코오롱, 포항제철등으로 이루어진 컨소시엄이 자연적으로 제 2이동통신사업을 흭득하게 된다. 이 콘소시엄에 의해서 설립된 회사가 바로 신세기통신이다. 결론적으로 이 신세기 통신은 먼 훗날.. 경쟁력 악화로 인하여 SK텔레콤과 합병하게 된다.


SK그룹은 그 후 94년 1월 24일과 25일 이틀간 진행된 한국이동통신 민영화를 위한 공개입찰에 참여해 4천271억2천만원(23%, 127만5천주)을 투자해 한국이동통신(KMT)를 인수한다. 이후 같은해 6월 2일 한국통신은 한국이통통신의 지분 20%만을 남기고 모두 매각한다.

그리고  몇년후, SK그룹은 당시 회장이었던 최종현 회장의 직권으로 한국이동통신을 주식시장내에서(그 당시만해도 장외매매라는 개념이 없었다.) 에서 23%의 주식을 공개입찰로 매입하여 실질적인 한국이동통신의 대주주가 되어 경영에 참여하게 된다. 이 때 상황은 어느 업체도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지만 사업의 확신과 자금에 대한 부담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더우기 당시 SK텔레콤은 이미 기대감에 거의 3배이상 올라와 있었던 상황이기에 시장에서 이렇게 비싼 가격으로 살 이유를 다른 어떤 업체도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물론 SK그룹내부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러한 내용이 앞의 초기 제2 이동통신의 초기 선정과정과 맞물려 계속 잘못된 내용으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그 이후의 상황은 더 다이나믹하다.

1992년 12월 3일 정부는 이동통신 원천기술을 CDMA로 단일화 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아직 세계 어디서도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한 상태여서 이후 국내 상용화 진척이 답보상태에 빠진다. 이에 93년 9월 16일 한국이동통신내에 '이동통신 기술개발 사업관리단'이 발족된다. 당시 단장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나중에 SK텔레콤의 사장을 지내고 과기부 장관을 역임하는 서정욱씨다.
서 단장은 공동개발이 아니라 중복의 위험을 무릅쓰고 업체간 경쟁개발이라는 카드를 빼들어 결국 94년 11월 18일한국이동통신 중앙연구소에서 당시 윤동윤 체신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CDMA 시스템과 아날로그 시스템, 유선전화(PSTN) 사이의 상호통화에 모두 성공했다.  그러나 95년 5월 PCS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준비업체들은 당시 세계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TDMA 방식으로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CDMA냐 TDMA냐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고, 95년 10월 20일 정보통신부는 'PCS무선접속방식을 CDMA로 단일화 한다'고 선언함으로써 CDMA에 힘을 실었다.

97년 10월 1일에는 PCS 3사(한국통신프리텔, LG텔레콤, 한솔PCS)가 예정보다 2개월 빨리 일제히 상용서비스에 들어갔다. 이로써 국내 이동전화 서비스 시장은 본격적인 경쟁기를 맞으며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역사에 가정이라는 없다 하지만..
1. 만약 한국이동통신이 민영화 되지 않고 있었으면 지금만큼 성장했을까?
2. CDMA를 상용화 하지 못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통신대국이 될 수 있을까?
3. 만약, 초기 제2이동통신을 그래도 SK 그룹이 인수 했던라면..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성장하지 못했더라면. 과연.. 권력밀착에 의한 단합으로 치부될 수 있을까..
4. 삐삐로 성장하여 흭득된 금액을 "시티폰"등으로 투입하지 않았으면 이동통신사의 역학구도는 어떻게 바뀔 수 있었을까.?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통해서 돈을 벌면 칭찬을 받지만 SK텔레콤은 수익이 많을 수 록 정치권, 시민단체, 소비자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다.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부분적으로 성공한 사업을 하면서 원가에 대한 원칙으로 통화료를 내려야 된다는 부분도 일면 이해하면서도,, 투자가 없는 소극적인 사업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하게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잘못된 사항을 정확히 바로 잡기위해서는 우리 역시 "권력 유착"으로 이루어진 SK텔레콤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고객의 가치를 챙겨주지 못하는 SK텔레콤을 비난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덧글

  • 모나리 2007/11/15 16:18 # 삭제

    그옛날 이런일이 있었다는거는 몰랐네요.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여기에서는 "숨" 소리가 들리네요.
    잘보고 갑니다.~~*^^*

  • ㅁㅁㅁㅁㅁㅁㅁㅁ 2007/12/02 11:28 # 삭제

    sk텔레콤은 돈을 벌어봐야 국내에서 버는거구요.
    삼성메모리는 해외에 수출하는게 더 많으니까.
    수출하는 기업과 내수 의존 기업의 매출이 많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저런건 당연한게 아닐까요?
  • 浮雲 2007/12/02 14:01 #

    네.. 맞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비난받아야 될 것은 있습니다. 문제는 글로벌을 외치고 해외로 나갈려고 할때도 국민들은 똑같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이죠..
  • 2008/02/17 02:01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浮雲 2008/02/17 21:24 #

    박진표님.. 많이 펌질하여도 괜찮습니다.
  • 2008/07/02 13:49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다른소리 2008/07/04 02:50 # 삭제

    너무 표면적인 것만 보시지 않나 싶네요.......)
    그 당시 한국이동통신은 이미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죠. 삐삐(012)라는 게 있었으니까요.
    사내유보금이 6000억정도 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경이 당시에 낸 금액이 300억정도 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총금액이 아니라
    증거금이던가로 말이죠 그리고 일단 인수하고나서 사내유보금으로 돌려막은걸로 알고있고요.
    또 한국통신이 매각하는 나머지주식도 장외거래를 통해 헐값에 사들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노태우라는 권력을 통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기업을 거저먹은거죠
    참고로 노태우가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에 한 결재가 한국이동통신을 선경에 매각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사유화(민영화)를 통해 여러가지 발전이 있었다 말씀하시는데 역사에 가정은 없는거지만
    전세계적으로 봤을때 순수익이 20%대인 이동통신회사는 sk뿐이라고 알고있습니다.




  • 浮雲 2008/07/04 17:21 #

    1. 삐삐의 전성기는 1998년도입니다. 동시대에 다른 여타의 이동통신업자들도 똑같은 사업기회가 있었습니다.

    2. 자꾸 제1이동통신사업과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혼선하시는데, 한국이동통신(제1이동통신)은 증권시장내에서 거래한 것이고, 글에도 나왔지만 4,000억원이 투입되었습니다. 증권용어로 미수/신용 없었습니다.

    3. 노태우가 마지막에 한 것은 제2이동통신사업자의 선정의 건입니다. 제발 글좀 읽으세요~~

    4. 순이익이 20%대라는 것이 한국밖에 없다는 근거를 알려주세요. 표면적인 내용으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는 반박내용이 너무 표면적입니다.
  • 레인맨 2008/07/08 10:54 # 삭제

    다른 소리 님이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셨군요...
    한가지 덧붙이면 전세계적으로 당기순이익이 20% 대인 이동통신회사는 무수히 많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 호주, 멕시코, 캐나다 등등 에서입니다.....
    아울러 그 순이익을 가지고 꾸준히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할 거 같습니다
  • 浮雲 2008/07/08 13:24 #

    네 추가적인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아시아,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의 이동통신사는 독과점이 많습니다.

  • 조선얼짱 2009/03/31 16:43 # 삭제

    다른소리님 글을 읽고 적습니다.

    온라인을 보다보면 너무나 많은이들이 SK의 이동통신 사업권이
    노태우 정권이 선사한 사업권이라고들 하는데 ..
    말씀해주신것처럼 그건 당시 한국이동통신 하나만 있던 시절에 민간기업들을 참여케
    하기 위한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관련된거였고, 그 부분도 선경(SK)은 오래전부터
    준비를 한것인데 오비이락이라고 해야할지 .. 정권과의 특수성이 문제가 된것이고
    자진해서 그 사업권을 반납했던거죠.

    당시 재계에서는 민간기업들이 이동통신사업을 하면 한국이동통신이란 기업을 금방
    제칠줄 알았고 경쟁력이 뛰어날거라 믿었기에 후에 선경(SK)이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때
    참여를 한다고 해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판단들을 했던건데 사실 민영기업으로
    출발한 신세기가 생각 만큼 경쟁력이 없었죠.

    또, 선경이 주식시장에서 주식매입을 통해 지분을 갖게 된건데 알다시피 한 기업의 경영권을
    위한 주식매집이 시작되면 당초 가격보다 몇배가 폭등을 하게되죠.
    그러한 가격폭등을 감수하면서도 주식매입을 통해 경영권을 갖게 된건데 .. 헐값이라고들
    하는것도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들 주고 받는 그저 이야기들 뿐인거죠 ..
    정확히 알아보지 않고 주고 받는 이야기 속에 기업의 정당한 경영활동이 특혜니 뭐니로
    폄하되는것이고..

    바로 알고 바로 이야기해야할 문제 같습니다.
  • 浮雲 2009/03/31 16:45 #

    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Fact를 Fact로 받아줘야 되는데. 싸잡아서.. 비판하는 것이 문제죠..
  • flatworld 2009/08/26 17:08 # 삭제

    92년 대선당시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와 SK 최종현회장이 독대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사업권을 반납하죠.
    그 후 김영삼 후보는 대통령이 되고 한국이동통신은 민영화 됩니다.
    당시에 무슨 입찰이나 그런것도 없이 단독으로 SK가 낙찰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만 하겠습니다.

    이런 논란 자체가 좀 웃기네요.
    당시에 대학생, 아니 고등학생만 되도 다 아는 이야기 였는데
    세월이 무섭습니다.
  • 浮雲 2009/08/26 20:34 #

    입찰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산 것입니다. 웃지만 마시고 본문을 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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