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8월 25일
사진 수정과 포토샾
그러나 조작과 수정은 어감에 차이가 있을 뿐 그 내용적인 면에서는 거의 같은 뜻이 아닐까?
아마추어 들이 활동하는 레이소다, 니콘클럽, slr 클럽 등등 내가 주로 가는 몇몇 사진 갤러리 싸이트에 가보면 그저 한숨만 나오기 일 수다.
어찌 그리 색상도 화사하고 빛도 멋있을까? 열씨미 사진을 찍었건만....
실력은 그대로고 저 멋찐 사진은 요원할 뿐...카메라가 구형이라 그런가?
맞다 ~!
빠른 자동초점 기능과 다양한 측광방식, 고가의 렌즈군.. 뭐 이런 거 없어서다. 그래 돈을 모아 나도 사자...~~! 뭐 이런 생각도 해보고...
여러 날을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 첫째, 실력부족과, 둘째,장비, 셋째, 포토삽!!!!! 바로 그거였다!
그 장소, 그 시간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런 빛과 명암..
그건 바로 포토샵이라는 요상한 마술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저런 빛과 명암이 나올수 있을까? 많이 고민 했지만 위 사진들을 잘 보면 포토삽으로 후보정을 한 작품이란걸 알수 있습니다 출처-레이소다>
앞서 말했듯이 좋은 사진에 가장 기본은 물론 실력이다. 아무리 포토삽이 강력하다 해도 엉터리 사진을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 수 는 없다.
우선 사진이 어느 정도 완성도 가 있어야 포토삽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초점이 완전히 벗어나고 노출도 엉망인 사진을 멋찐 사진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잘못된 사진은훌륭한 사진으로 탈바꿈 시켜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포토삽이다.
노출이 좀 부족하거나과할 경우 이를 수정할수 있으며,불필요한 장면을 삭제해 사진의 주제를 부각 시킨다든지.. 자신이 원하는 색상을 더 강조하거나 줄여 사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꾼다든지..
더 나아가 사진합성과 특수효과도 가능하고 이밖에도 무수히 많은 기능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하다.
어쭙지 않은 똥고집으로 난 "내가 찍은 사진 절대 수정 않해"!라고 호기있게 주장하기도 했지만
그건 사진에 대한 어떤 고귀한 신조 때문이 아니라 수정하는 방법을 몰라 둘러댄 변명에 불과했다.
문제는 과연 자신이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조작 또는 수정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남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포토삽을 이용한 사진보정은 정당한 자기표현일 수도 있고 그렇치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사진 보정은 더 아름답고 더 멋진 사진을 위한 미화일수도 있고 자기가 찍은 사진의 결함이나 실수를 숨기기 위한 거짓일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사진보정이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측면을 보면 디지털 카메라 출현 이전에도 많은 사진작가들은 암실에서 필름 현상과 인화를 통해 다양한 보정을 했다는 것이다.
약품의 조합과 사용량 조절, 현상시 노출의 정도나 범위 조절, 인화시 확대 및 축소 그리고 크로핑 등을 통해 원래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정해왔다는 것이다.
단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암실에서 행하던 보정이 컴퓨터와 포토삽으로 변했다는 것이 다를 뿐...
사진의 수정은 크게 세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암실및 포토샵에 공히 적용된다.
첫째, 사진의 명암, 색조, 계조 등을 보정하는 것과
둘째, 사진의 확대, 축소, 크로핑으로 사진의 구도를 수정하는 방법
셋째, 피사체를 표정, 모습,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여사진의 상황을 연출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사진의 합성, 과장, 특수 효과 등을 통해 사진을 적극적으로 조작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사진으로어떤 추상적인 개념이나 느낌, 무형의 대상물 등을 창조해내기위해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일러스트레이션 사진이 있다.
<왼쪽 사진은 원본 사진이고 오른쪽은 포토샵으로 명암과 색도 채도를 후보정한 사진입니다.>
<왼쪽이 원본 오른쪽이 포토샵 후보정 사진입니다..완전 수동에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저로써는 움직이는 특히 아이들 사진은 정말 어려운 피사체중 하나입니다.. 촛점 맞추기가 너무 어려워서~ 노출 생각할 겨를이 없이 셔터를 누를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때 필요한것이 바로 포토샵입니다.>
<위 사진은 포토삽으로 크로핑한 사진입니다. 왼쪽 사진을 보면 24mm로 찍어서 하단부에 필요없는 공간이 너무 많고 피사체인 소녀가 너무 작아 보였습니다..그래서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짤라 버려 사진 구도를 수정한 사진입니다.>
<위 사진은 포토삽으로 합성한 사진입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장난스런 사진이나 추상사진, 광고사진 등에서 사진합성 기법을 이용합니다.>
위 네가지 보정에 대해 윤리적인 측면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진은 바로 상업사진 즉 광고사진이다.
광고사진은 뭐든 가능하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소비자 즉 사진을 보고 제3자가 구매 욕구를 충족시기기만 하면 되므로 사진수정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보도사진이나 다큐멘터리의 경우 사진수정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불문율이 존재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카르띠에 브레송이다.
그는 어떤 후보정도 하지 않고 거의 완벽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주 일반적인 후보정이랄 수 있는 크로핑 조차하지 않았고 현상과 인화도 본인이 하지 않았을 정도다.
<스페인 어느 마을 폐허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찍은 브레송의 사진입니다. 어떻게 그 작은 라이카 뷰파인더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몸짖과 배경의 구도를 순간적으로 잡아 낼수 있는지..>
그는 사진이 빛의 예술이 아닌 시간의 예술로 바라본 것 같다. 어떤 순간 그 순간의 느낌과 감정은 절대 복제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그 순간은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훼손하는 그 어떤 수정도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위에 네가지 사진 보정을 거의 하지 않은 작가지만 누구나가 그와 같이 완벽하게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때로는 절대 객관적이어야 할 보도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도 어느 정도 사진 수정이 가해진다.
그러나 그 경계를 명확히 한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예를 들면 보도사진과 다큐멘트 사진으로 유명한 유진스미스는 태평양 전쟁 중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기며 급박한 전장을 정말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가지만
라이프지에 실린 그 유명한 ‘시골의사’와 ‘스페인 마을’의 경우 엄정한 중립성과 객관적인 시각을 넘어 그가 만들어 내고 싶은 장면을 스스럼 없이 연출해내기도 했다.
<왼쪽 사진은 태평양 전쟁중 찍은 사진입니다. 콘트라스트를 강하게 보정하는 정도 말고 연출의 개연성이 전혀 없는 절박한 순간의 사진입니다. 오끼나와 섬 어느 동굴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일본군과 주민들을 향해 미해병대원들은 화염방사기와 수류탄으로 공격을 하고 굴속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죽었지만 죽은 시체더미에세 한 생명이 살아남았고 그 어린아기를 들고 나오는 병사를 극적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유진 스미스가 스폐인 어느 마을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하나입니다. 연출이냐 아니냐 논란이 많았던 사진이라고는 하지만 연출 여부를 떠나 너무도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왼쪽 사진도 역시 태평양 전쟁중 이오지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돌격하는 일본군을 사살하고 그 시체 옆에서 사격을 하고 있는 병사를 찍은 사진입니다. 유진 스미스는 전쟁중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중에는 큰 부상을 입기도 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스폐인 마을 사진중 일부 입니다. 연출 논란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 옆에 장성한 딸들과 아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죽음 그리고 남은자의 애잔한 슬픔이 잘 표현된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이 한장의 사진이 지닌 가치가 과연 연출여부에 따라 달라질까요? >
특히 스페인의 한 마을에서 찍은 사진의 경우 연출논란으로 말들이 많았으나, 그 사진을 보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진실성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연출 논란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보도사진은 여타 사진류에 비해 사진수정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약간의 후보정을 제외하고 사진 조작이나 연출은 아직도 금기시 된다.
도의적인 책임을 정도가 아니라 사진가로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엄격하다고 한다.
얼마 전 영국의 한 사진기자는 이라크전 취재시 사진합성으로 해고된 적이 있고(아래 사진),
여러 사진기자가 사진 보정 및 수정, 연출을 이유로 해고된 사례가 무지기 수다.
<다치거나 어딘가 아플것 같은 어린 자식을 안고 뭐언가를 하기위해 일어서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부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 한 병사는 앉으라고 소리를 친다... 멋진 순간을 잘 포착한 사진... 그러나 아래 사진은 사실 위에 두 장면을 합성한 사진으로 판명되었다. 물론 이 사진기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다>
순수 예술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진의 본질을 왜곡할 정도로 과도한 수정이나 합성의 경우
지탄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비근한 예로 얼마전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주최한 사진대전에서 대상으로 받은 작품이 합성으로 드러나 대상 선정이 취소되는 불미스런 일도 있다. (아래 사진)
<평화로이 물을 마시는 양떼와 그 옆에 한가로이 앉아있는 앙치기 소년 작품제목 처럼 평화가 생각 나는 정적인 이작품은 사실 작가가 예전에 찍은 양떼 사진과 새로 찍은 사진을 합성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자 그럼 나 같은 아마추어 초짜는 사진보정이나 수정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 인가?
자신이 찍은 사진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진을 더 아름답게, 더 호소력 있게 표현하기 위한 보정이나 수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진가의 진실성이 필요하며 사진의 목적에 따른 수정의 정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성과 사실성이 중시되는 보도사진이나 사실 전달을 위한 사진의 경우
사진수정의 범위를 극히 제한할 필요가 있으며,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우도 보정이나 수정을 과하게 하여 자신이 찍은 사진의 본질을 훼손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순수사진의 경우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 필요하다면 과감한 사진보정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사진을 사진 공모전이나 대외적으로 공개할 경우 어떤 보정을 어떻게 하였는가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사진은 결국 보는 사람이 그 사진을 보고 느끼는 감정과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기에
사진의 후보정이나 수정작업이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한다.
어떻게 수정을 하던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아름다움을 느끼면 되는 거지
모든 이가 카르티에 브레송처럼 완벽한 사진을 추구하는 것만이 선은 아니라고 했다.
물론 마지막 문장에 이런 말도 남겼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진의 보정이나 크로핑은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니다. 사진을 수정하는 순간 그건 사진을 찍을 당시 사진가가 느끼고 보았던 그 진실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끝!
# by | 2006/08/25 11:37 | 사진/여행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