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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예쁜 이야기

 1919년, 서머셋 모옴이 『달과 6펜스』를 발표했을 때 빵 한 덩이가 6펜스였다고 한다. 즉 작가는 꿈을 상징하는 '달'과 현실을 의미하는 '6펜스'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을 비유한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실제 모델이 화가 폴 고갱( Paul Gauguin, 1848.6.7 ~ 1903. 5.8)이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젋은 영국작가 서머셋 모옴이 고갱의 흔적을 찾기위해 타히티를 직접 다녀와서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쓰게 되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고갱은 생전 그토록 원했던 화가로서의 작품세계를 인정받게 된다.

고갱이 죽은후 110년이 지나서 서울 정동 시립미술관에 그의 작품들이 서울로 돌아왔다. 3년의 준비기간을 통해서 세계 각국에 산재되어있던 고갱의 작품을 모은 것 자체가 뉴스가 되었던 전시회인데, 작품에 대한 보험금액만 1조 5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1891년 4월, 고갱은 오염된 '문명의 몸'을 벗어 버리고 자연의 순수한 '원시의 몸'을 찾기 위해 타히티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증권중개인, 은행직원등의 직업외에 선원의 경험도 있었기에 머나먼 곳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자신이 동경했던 원시의 이상향을 그리며 홀로 떠나는 고독한 여정이었다.

 60일 가까운 항해 끝에 꿈에 그리던 타히티의 파페에테에 도착한 고갱은 오염되지 않은 원시의 타히티 '향기'를 맡으며 원주민과 다름없는 생활속에서 화폭에 그 생생한 '야성적 상상력'을 펼쳐 나갔다.

고갱의 작품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타히티에서 말년에 작업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다소  철학적인 제목의 작품이다. 당연히 서울의 전시회에도 메인포스터에 쓰이고 있다.

실제 고갱의 다른 작품들이 다소 추상화적인 느낌이기에 작품성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에 비해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는 여타의 작품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고갱의 대표작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어디에서......"를 실제로 본 느낌은 오르세미술관에 있는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  를 연상케 한다. 넓은 화폭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과 정물들이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느낌이  유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동양적인 샤머니즘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듯 제목을 암시하는 시작(아이)과 끝(노인)도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좌상단에는 제목을 우상단에는 작가의 싸인을 적어놓았는데 작품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의 차지부터 작가의 도전적인 접근이 시작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제목처럼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화폭의 가장 오른쪽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해당되는 주제에 해당되는데 조용히 잠들어있는 아이와 젊은 여자 세 명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혀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느 아이와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은 누가 아이의 엄마인지를 알려주지 않고 있다.  그 뒤로 주홍색의 옷을 입은 인물들은 진지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작가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가운데 쪼그려 앉아 있는 여인은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 라는 두 번째 주제의 중심은 화면 중앙에 과일을 따고 있는 인물이다. 선악과를 연상케하는 과일을 따고 있는 남자를 통해서 세상을 살면서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양팔을 들고 서 있는 신상(神像)은 사후의 세계를 보장하는 '히나'라는 폴리네시아의 여신인데 다가올 세상을 암시하면서 과일을 먹고 있는 어린아이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주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화면 왼쪽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노파다. 죽음을 앞에 두고 촛점을 잃은채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풀밭위의 점심식사의 개구리를 연상케하는 흰 새는 의미 없는 언어의 공허함을 상징한다.

파리에서의 전시회 실패등으로 자살을 생각하면서 한 달 동안 제작한 이 작품은 인간의 운명과 다양한 행로를 상징하고 있다.

고갱은 1897년 2월 몽프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갱은 이 작품에 관해 스스로 정리하고 있다.

“아이 곁에 고양이 두 마리와 흰 염소도 한 마리 볼 수 있지. 신상이 하나 있는데 신비롭고 리듬 있게 두 팔을 쳐들고 내세를 가리키는 듯한 모양일세 …

그리고 죽음이 임박한 듯한 늙은 여인이 있네.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운명에 맡긴 듯한 모습이라네.
그녀의 발치에 낯선 흰 새 한 마리가 두 발로 도마뱀을 움켜쥐고 있다.” 


자신의 천재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아 화가로서 빠르게 성공할 줄 알았던 폴 고갱은 천재로 인정받기커녕 가난에 시달려 가족들과도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지상의 낙원이라고 선택해 찾아간 타히티에서도 낙원을 찾았지만 가난과 병마는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언을 대신하여 그림으로 그렸던 작품이 바로 "우리가 어디에서..." 인 것이다.
고갱 스스로 "이 작품은 그동안 내가 해온 것들을 초월하는 것으로, 이와 같거나 이보다 더 나은 그림을 난 그릴 수 없을 것 같네.
죽기 전에 나의 모든 에너지와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열정을 다 쏟으려고 하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작품속에 던진 이 근본적인 질문에는 보이지 않는 '영원의 몸'에 대한 궁극의 의문이 내포되어 있다.
비록 자살에는 실패하지만, 폴고갱은 본인의 열정을 담은 작품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였다. 그 것이 작가에는 승리와 회춘(回春)의 향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쁜 세상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오고 가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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