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리투아니아 중세의 수도였던 트라카이성에서 시작되었다. 갈베호수위에 떠있는 트라카이성은 14세기초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행정, 경제, 국방의 중심지로 외세로부터 수도를 지키기 위해서 지어진 곳으로 맑은호수사이로 붉은벽돌의 조화가 한폭의 그림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2009년 유럽문화의 수도로 선정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는 다양한 양식의 성당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성베드로 바울성당은 소박한 외관과는 달리 200여개의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과 부조양식이 이방인의 시선을 멈추게 하고 있다.
구시가지 여행은 새벽의 문을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16세기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원래는 도시를 지키는 성의 일부분이었다고 한다. 2층에는 검은 성모마리아상이 있는데 기적을 행하는 성화로 알려져 있어 새벽의 문은 리투아니아에서도 성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전형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지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양식 등의 시대에 따른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과 건축물을 모은 커다란 박물관이다.
관광을 하기에는 넓지 않은 골목길 사이로 중세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간 곳은 빌뉴스의 상징인 게디미나스성이었다. 빌뉴스로 수도를 옮긴 게디미나스 공작이 처음으로 지었다는 성인데 이곳에서 보는 구시가지의 전경은 아름답기로 이름나있다. 특히 1989년 200만명의 발트인이 인간사슬을 만들어 독립을 주장한 시발지로서 유명하다.
좁은 골목길을 걷던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 곳은 문학골목이었다. 다양한 문학인들의 작품들이 좁은 골목속 담벼락에 촘촘히 붙어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한 눈에 접할 수 있는 있었는데 초기에 101명의 작품이 소개되었다가 이후로 추가적으로 작품들이 각각의 번호를 붙이고 여행객의 눈길을 기다려주고 있다. 촘촘히 붙어있는 작품만큼이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빈 공간의 여유가 더 그리울 듯 하다.
고딕양식의 오나성당은 나폴레옹이 와서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 했을 만큼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많은 여행객들 뒤로 누구도 보아주지 않아도 홀로이 제 모습을 뽐내고 있는 작은 꽃송이와 같이 지구 반대쪽에서 세월을 이겨내며 도시의 아름다움을 도와주고 있었다.
십자가 언덕으로 가는 동안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예술인의 마을로 알려진 우주피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소련시대만 해도 가장 낙후 되고 소외된 마을이었으나 1997년 정식 헌법을 가진 우주피스 공화국을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매년 4월 1일 하루만 국가를 형성하는데 에술인들의 재치와 감각으로 만들어진 헌법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전부 41조에 이르는 우주피스 헌법 중 대표적인 조문을 보면
▲ 사람은 누구나 빌넬례 강변에 살 권리가 있으며, 빌넬례 강은 사람 옆을 흐를 권리가 있다.
▲ 개에겐 개가 될 권리가 있다.
▲ 고양이에겐 주인을 사랑할 의무가 없지만, 어려운 시기에는 그를 도울 의무가 있다.
▲ 사람에겐 행복할 권리가 있다.
▲ 사람에겐 행복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 누구에게나 눈에 띄지 않고 유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 사람에겐 아무런 권리도 갖지 않을 권리가 있다.
▲ 사람에겐 그 권리를 가끔 등한시할 권리가 있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젊음이 넘쳐나는 활기 있는 거리로 변한 이곳은 이제는 빌뉴스의 몽마르뜨로 불린다고 한다. . 그리고 우주피스를 더 좋은 마을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2시간 30분정도 이동하여 샤울레이에 있는 십자가 언덕에 도착했다. 비를 잔뜩 머금은 하늘빛이 독립을 위해 싸우다 회생된 젋은이들의 넋을 기리기위해 만들어진 십자가 언덕으로 가는 길의 엄숙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십자가에 십자가가 걸쳐있고 그 앞뒤로 다시 십자가가 있는 모습은 역경많은 세상사는 모습의 축소판인 듯 하다. 구원의 의미로 만들어진 십자가를 죽음과 고통의 상징으로만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나로서는 새로움 경험이다. 십자가는 그 자체가 기억이다. 기억으로 이끄는 길은 아름다웠다.
뮤지컬 감독으로 유명해진 박칼린 감독의 에세이집에서 이 십자가 언덕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향 리투아니아를 찾아가는 어머니를 위해서 나무판에 십자가를 깎고, 그 가운데, 믹포빌을 상징하는 M자와 함께 그 피가 흐르는 가족들의 이름을 새긴 나무 십자가 이야기가 세심하고 열의에 찬 인간 박칼린을 떠오르게 하는데 바로 그 곳에 와있었다. 발트3국의 두번째 나라 라트비아의 첫 여행지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룬달레 궁전과 장미정원에서 시작된다. '라투비아의 베르샤유'로 불리고 있는 룬달레 궁전은 베르샤유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더 화려했고 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북쪽으로 1시간 30분을 이동하면 발트해의 파리라고 이야기하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도착한다. 발트3국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한데 8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구시가지의 돌길을 따라 중세로 가는 시간여행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피터 성당 뒤편으로 가면 관광객들의 무리사이로 친숙한 모양의 동상이 있다. 그림형제의 유명한 동화 〈브레멘의 음악대〉에 나오는 동물들의 동상인데 독일 브레멘시가 리가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이 동물들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해서 관광객들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리가는 영화 베를린의 총격전을 찍었던 장소로도 유명한데 촬영장소근처에 있는 '설악산'이라는 유일한 한식당은 중국에 유학을 가서 라투비아의 유학생을 만나서 결혼한후 젊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한국사람이 15명내외 사는 곳이기에 무척 반갑기도 했지만 라투비아까지 오게된 사연이 영화의 한 장면같아서 더 인상적이었다.
투라이다 성 근처에는 발트에서 가장 큰(?) 쿠트마니스 동굴이 있다. 현지 가이드의 과장된 설명에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실제 가보면 사진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다. 암반과 토양특성때문에 동굴자체가 형성되기가 힘든 지역이다 보니 가장 큰 동굴이라는 익살스러운 설명이 있었던 것 같다. 입구에는 구시가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거리의 악사가 있었는데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라트비아의 원곡이기도 한 '백만송이 장미'를 연주하고 있었다. 동굴에 새겨진 오래된 낙서들이 볼만하다.
투라이더 성은 가우야 국립공원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러시아와 스웨덴의 침략을 막기위해서 세워진 곳인데 이제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돈존타워 꼭대기에서 가우야강과 어루러진 숲의 전경을 감상할 수있었다.
에스토니아에 들어가는 국경지대를 넘어서자마자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페르누로 이동한다.
북극과 가까운 바다에서 계절은 한여름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지만 이 곳은 아직도 한기가 느껴진다. 염분농도가 낮아서 추운 겨울철에는 온통이 꽁꽁 얼어버리기 때문에 흰색의 의미를 가진 '발트'라고 불려진 것 같다. 구시가에서의 시간여행을 잠시 덮어두고 짧은 여름을 북극과 가까운 이 바다의 정취를 만끽한다. 높고 푸른 하늘과 바다 위로 시간은 또한번 정지하고 있다.
발트3국중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동화나라의 초청장을 받은 이방인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정통복장을 하면서 호객행위를 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조차 하나의 관광상품이었다.
러시아정교회의 알렉산데르 넵스키 교회를 시작으로 탈린의 구시가지를 흔적을 느껴본다.
발트의 여왕이라는 호칭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푸르른 하늘 아래 붉은 지붕을 머리에 인 건물들은 그대로 그림이 되어 서있고, 그 아래로 펼쳐져 있는 노천카페의 한가로운 풍경은 세상의 평화를 다 담고 있는 것 같다.
산지가 없는 탈린의 하늘은 구름도 낮게 내려앉아 쉬고 싶은 곳일게다. 이제 그만 시간을 멈추어달라고 한다.
시간을 내서 여행을 하고 시간을 그리워 하다가 다시 시간을 얻어서 간다. 지나온 시간을 다시 밟아가며 다가올 시간을 정리해준다. 여행은 시간의 품앗이다. 여행은 시작이고 마지막이다.
탈린에서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까지는 차로 5시간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다. 일요일 오후에 국경을 넘으면서 맑았던 날씨가 강한 비구름으로 바뀌었다. 자연의 변화로 새로운 도시의 시작을 알린다.
'8월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하는 달'이라고 인디언은 표현하다. 8월의 첫날 비와 함께 그 동안의 여정은 모두 잊어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다.
표트르대제의 여름궁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처음을 시작한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는 궁전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규모나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베르사유궁전이 따라올 수 없었다. 여의도 크기만한 곳에 64개의 분수와 255개의 조각상으로 꾸며 여름궁전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궁전 내 공원 길가에 비브란폰 연주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발트3국과는 또 다른 규모와 풍광이 맑고 청아한 거리연주에 발길을 가볍게 해주고 있다.
마르스 광장의 꺼지지 않는 불꽃 근처에 있는 피의 사원은 모스크바의 '바실리 사원'과 비슷한 외관을 하고 있어서 러시아 여행의 상징이기도 하다.
러시아 문학의 탄생지로 이야기하는 네프스키 대로를 걷다보면 이 거리를 대표하는 카잔 성당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이 건축물은 특히 반원형 회랑 사이로 들어선 9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시선을 압도한다. 옆으로는 1812년 나폴레옹 침공을 물리친 쿠투조프 장군의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바실리섬은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도시의 섬들중에서도 가장 큰 섬이다. 에르미타쥬 미술관을 마주하고 있고 뱃머리 등대와 페트로파블롬프스키 요새 등을 먼 발취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밤새 내린 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청량함을 더해주고 있다.
여행의 기쁨중에 하나는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도 포함되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이 살던 곳을 개조해서 만든 식당에서의 식사는 이번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해주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만큼이나 깔끔한 음식맛은 아마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겨울궁전으로 알려진 에르미타쥬 미술관은 세계 3대 미술관 가운데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 예술품을 골고루 소장하고 있다. 300만점의 전시품이 있기에 짧은 여행기간에 모든 곳을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빛의 화가 렘브란트와 루빈스 작품을 중심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표트르 대제의 딸 Jason이 오늘날의 겨울 궁전을 건설해서 예카테리나 대제 때에 문화의 황금기를 맞는데 밖으로 실내 정원이 나 있는 ‘시계의 방’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겨울 궁전을 프랑스어로 ‘예르미타시’(은둔지, 인적이 없는 방)라고 즐겨 불러서 지금의 예르미타쥬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은 모스크바에서 마무리한다. 공항은 10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야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일몰수준의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
모스크바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방사형 도시로 만들어졌다. 모스크바의 직선도로는 모두 모스크바 중심으로 가기때문에 신호등이나 표지판이 거의 없었다.
모스크바 관광은 붉은 광장에서 시작해서 붉은광장에서 마무리 된다. 러시아의 심장이라고 하는 크레믈린 안에서 15세기의 다양한 건축물을 보고나와 다시 광장으로 나서면 테트리스의 시작화면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성바실리 성당을 보게 된다.
16세기 이반4세가 몽골의 카잔왕국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성바실리 성당은 여덟 개의 양파 모양의 탑이 불규칙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제각기 다르게 보인다. 러시아 정교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는 이 성당이 완성되자 이반4세가 다시는 똑같은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가의 눈을 뺐다는 슬픈 이야기가 바실리 성당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참새언덕과 하늘을 찌르는 스탈린 양식의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마지막으로 발틱3국과 러시아의 여행을 마무리한다.
사실 발틱3국은 지리적으로 함께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많지 않다. 언어와 역사 종교 등이 모두 다르지만 러시아에서 독립하고 유로연합에 가입한 이후 북유럽과 러시아를 연결해주는 새로운 여행지로 각광받고는 있지만 아직은 낮선곳이기도 하다.
동유럽의 고풍스러움과 서유럽의 화려함을 조화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리투아니아는 단순하면서 중후했고, 라투비아는 여성스러우면서 발랄했다. 에스토니아는 화려하면서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러시아는 웅장하면서 기품이 있었다.
최근 덧글